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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

일제강점기 홋카이도(북해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by 도생(道生) 2017. 7. 29.

일제강점기 일본의 최북단 섬 홋카이도(북해도北海島) 탄광과 군사시설 건설현장 등에서

강제노역동원된 조선인 강제징용 해자

 

 

 

 

 

 

 

 

 

 

 

 

 

북해도(홋카이도)는 본래 아이누가 살던 섬으로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다.

홋카이도는 1868년 메이지유신 때 만들어진 일본 제국 헌법에서도 북해도(홋카이도)는 일본 영토에 포함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 제국 헌법에는 조선(대한민국)의 독도, 유구 열도(오키나와 유구왕국), 사할린, 쿠릴열도(북방 4도) 역시 일본 영토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부분 교과서와 학자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북해도(홋카이도)를 개척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의 북해도(홋카이도) 개척 역사는 왜곡된 것으로 일본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자국의 영토가 아닌 곳을 힘으로 개척한다는 것은 식민지화를 했다는 것으로 점령이며, 침략이 올바른 표현이다.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북해도)는 대한민국(남한)5분의 4에 육박하는 면적을 가진 섬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홋카이도는 특히 석탄이 많이 매장된 곳이다.

 

홋카이도(북해도) 지역의 석탄 매장량은 일본 전체  매장량의반을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매장량을 자랑하는 곳이었.

홋카이도(북해도) 탄광은 19세기 후반부터 채굴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일본인 남녀가 모두 채굴작업을 하였고,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직접 채굴하고 운반까지 하다 보니 생산량이 많지 않았다.

육상탄광이나 해저탄광에서의 채굴작업은 갱도붕괴의 위험성, 산소 부족과 석탄가루를 그대로 마시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도 문제가 컸다. 그리고 석탄 갱도의 특성상 높은 온도 때문에 채굴작업을 하는 남녀 모두 아랫 속옷만 걸친 채 작업을 해야만 했다.

 

 

 

 

 

 

 

 

 

 

 

 

일본 최북단의 섬 북해도(홋카이도)에 석탄 매장량이 많았기 때문에 석탄을 채굴하는 탄광 역시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태평양전쟁 말기 석탄 채굴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고, 남하하는 소련군으로부터 일본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홋카이도(북해도)에 비행장과 군사시설을 만드는데 조선인 강제징용자를 대거 동원했다.

 

 

혹독한 노동환경 속에서 혹한의 추위와 배고픔, 질병의 위험 앞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머나먼 타국 땅에서 고향의 부모 형제를 애타게 그리다 가슴 속에 한을 머금고 죽어갔다.  

 

 

 

 

 

 

 

 

 

 

 

 

일제강점기 홋카이도에 끌려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만 약 15만 명에 달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홋카이도(북해도)는 일본의 여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가 많이 끌려간 곳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자진 도일(渡日)하여 탄광에서 일한 조선인도 있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백성으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이 할 수 있는 직업위험하고, 힘들고, 지저분한 일에 한정되어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조선인 탄광 노무자는 일본인과 인권, 임금, 근로조건 등에서 차별을 받으며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 홋카이도(북해도)에 끌려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탄광에서 가장 많이 일했으며, 군수공장과 항만, 비행장, 도로, 댐 건설 등 군사기지 건설 현장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홋카이도(북해도) 전역의 2백 개가 넘는 곳에서 12시간이 넘는 혹독한 노동과 폭언과 폭행,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노예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다.

 

 

 

홋카이도(북해도)의 가와기타 해군비행장을 건설하는 공사장에서는 10세 안팎의 조선인 어린이까지 일본인의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강제노역에 동원됐다는 증언이 나왔고, 조선인 어린이 강제징용 피해자가 나타나면서 사실로 확인까지 됐다.

 

 

 

 

 

 

 

 

 

 

 

 

 

일제강점기 홋카이도(북해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중 탄광 붕괴와 사고, 일본에 의해 사망한 숫자는 현재까지 파악된 숫자만 2천여 명이 넘는다. 홋카이도(북해도)에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리다 사망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숫자는 일본군과 일본 기업 사망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고 매장되거나 화장된 조선인 강제징용 사망자 숫자까지 포함한다면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실제 일본과 한국의 단체가 홋카이도(북해도) 지역에서 사망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숫자와 사망자 유골 발굴과정에서 확인된 무명 또는 무연고자 사망자 숫자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일본은 전쟁에서 패망한 후 홋카이도 지역에 묻혀있던 다른 지역 출신 일본인 사망자 유해는 모두 이장했기 때문에 집단으로 발견된 유골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은 홋카이도(북해도) 지역에서 사망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를 화장하거나 아무 데나 묻어버렸다.

1997년부터 대한민국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일제강점기 홋카이도(북해도)에 끌려가 사망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유골 발굴을 시작했다.

 

머나먼 이국땅에 비참한 삶을 살다 억울하게 불귀의 객이 돼버린 조선인 강제징용 사망자 숫자는 현재로서 파악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지난 2015년 일제강점기 홋카이도(북해도) 지역에 끌려가 사망한 조선인 강제징용 사망자 115명의 유골이 70년 만에 죽어서나마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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