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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한민족9천년 역사)

한국 역사 침략의 첨병 일본군 참모본부의 일제 식민사관 '임나일본부설'

by 도생(道生) 2021. 11. 26.

야마토 왜(倭)가 고대 한반도 남부(가야)를 200년 동안 지배했다?

한국 역사 침략의 첨병 일본군 참모본부의 일제 식민사관 '임나일본부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왕정복고를 선언하면서 약 700년 동안 칼 찬 무사들이 정권을 잡았던 막부정권 시대가 끝나고 일본 제국주의가 탄생했습니다. 19세기 후반 서양 제국주의 열강들의 팽창전략에 일본도 편승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동아시아 침략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1868년 왕정복고 후 1870년 일본 육군과 해군 창설, 1871년 청·일 수호조약 체결, 1873년 일본 징병령 시행, 1874년 일본 육군사관학교 설립, 1876년 조·일 수호조약(강화도조약) 체결, 1878년 일본 왕 직속 참모본부 독립, 1885년 청·일 천진조약 체결, 1890년 일본 제국헌법 시행, 1894년 청일전쟁, 1896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등 굵직한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는 가운데 일제 식민사관의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하는 한국 역사 침략 행위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사학자를 필두로 민관군(民官軍)이 혼연일체가 되어 침략사관을 조작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국내외 군(軍)에서 운영하는 군사박물관은 대부분은 인물과 전투 등의 전쟁사와 군사 유적과 유물을 조사 정리하여 수집 전시합니다. 그러나 한국 역사 침략의 첨병노릇을 한 일본군 참모본부는 예외입니다.

 

 

 

 

 

 

막부정권 말기에 활동한 요시다 쇼인(1830~1859)은 '조선을 침략하자'라는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했습니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왕정복고에 성공한 일본 제국주의는 1870년 조선에 외교관을 파견합니다. 사다 하쿠보 등 조선에 파견된 일본 외교관은 일본군을 동원하여 조선을 정벌하자는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요시다 쇼인으로부터 대두된 이른바 '정한론'이 일본 제국주의가 한국 침략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일제 식민사관을 정립하기 위한 시작입니다. 팽창주의의 선봉에 서 있던 일본군도 한국 역사 침략의 첨병이 되어 일제 식민사관 정립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1878년 일본 왕 직속의 참모본부가 설립됩니다. 일본군 통수권자인 일본 왕을 직접 보필하고 명령을 하달하는 내각으로부터 분리된 기관입니다.

 

 

일본 왕의 직속 기관인 참모본부는 전쟁 때 일본 왕의 명령을 전군에 하달하여 일본군 전체를 통솔하는 대본영(大本營)입니다. 일본 왕이 기거하는 궁성(宮城) 바로 앞에 위치한 참모본부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었지만, 고대 야마토 왜가 한반도 남부(가야 영토)를 약 200년간 다스렸다고 억지 주장하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하는 데도 앞장섰습니다.

 

 

 

 

 

 

일본 왕을 보필하고 군사적 명령을 전달해야 할 일본군 참모본부가 한국 역사 침략에 첨병노릇을 했습니다. 일본군 참모본부는 1880년 '황조병사(皇朝兵史)', 1882년 '임나고(任那考)', '임나고고(任那稿考)', 임나명고(任那名考)' 등 임나(任那)와 관련된 책을 간행합니다. '황조병사'는 '황국, 황군, 황조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고대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군주와 신하의 관계로 기술하는 등 일제 황국사관과 식민사관에 따라 조작된 책입니다.

 

 

'황조병사'는 전쟁과 전투에 관한 내용으로 48종의 책을 인용해 고대 한반도는 일본의 지배를 받은 식민지라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의 조작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880년 일본군 참모본부에서 간첩으로 파견한 사코 가게노부 중위는 광개토태왕비문 내용을 변조한 후 탁본을 떠서 1884년 일본으로 가져갔습니다. 

 

 

사코 가게노부가 일본으로 가지고 들어온 광개토태왕비 내용을 변조한 탁본을 바탕으로 1889년 일본군 참모본부가 '회여록(會餘錄)' 5집 '고구려고비'를 특집호로 발간합니다. 일본군 참모본부가 간행한 다른 서적과 마찬가지로 고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배했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을 조작하기 위해 일본 왕의 명령으로 한국 역사 침략의 첨병노릇을 한 것입니다.

 

 

대한민국 주류 강단사학이 조선의 국모(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의 낭인 깡패 아유카이 후사노신을 대학자로 칭송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역사학계가 일제 식민사관의 노예로 살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https://gdlsg.tistory.com/3318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낭인 깡패 아유카이 후사노신

'임나는 곧 가야,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한 아유카이 후사노신 조선의 국모 중전 민씨(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 낭인 깡패 이른바 '을미사변(乙未事變)'은 1895년(을미) 양력 10월 8일(음력 8월

gdlsg.tistory.com

 

 

 

 

<환단고기 북콘서트 부경대편: 38, 39, 40회 가야와 임나의 진실을 밝힌다>

https://www.youtube.com/watch?v=AOXK8TjtM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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