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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도전道典

예禮(예의)는 내 마음이 몸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참된 예禮를 통해 본 마음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by 도생(道生) 2014. 1. 23.

예禮(예의)는 그 깊은 곳에 있는 내 마음이 기거동작으로 몸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며,

참된 예禮를 통해 나의 본 마음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불수전강전편왈예不受專强專便曰禮요

너무 뻣뻣하거나 편의를 따른다 평 받지 않음이 옳은 예禮요.

(증산도 도전道典 8:94:2)

 

동어예자動於禮者라야 정어예靜於禮하나니 왈도리曰道理요

정어무례靜於無禮하면 즉왈무도리則曰無道理니라.

예에 맞게 동動하는 자라야 예에 맞게 정靜하나니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도리道理요

무례를 보고도 정靜하면 도리가 아니라고 하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8:107:2)

 

"나는 천하의 예의상 둘째가 될 수 없느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9:67:4)

 

 

 

 

예禮의 뿌리는 동방 한민족의 천제天祭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예禮는 어디서부터 유래되었는가?

예禮라는 글자를 보면, 보일 시示 옆에 풍豊 자를 썼다.

풍 자는 본래 그릇에 재물을 가득 담은 묘양이다.

즉 예禮는 "신神에게 제사를 드린다"는 뜻에서 온 말로 천지자연과 선령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체의 인간 행위가 예禮다.

 

중국의 하夏 은殷 주周 시대의 예문화의 근원은 바로 옛 조선朝鮮의 상제上帝문화다.

예란 본래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것을 말하는데, 그 천제天祭의 중심 대상이 바로 삼신 상제님인 것이다.

하나라 이전 당.우(요순시대) 때에도 제왕이 되면 가장 먼저 태산에 올라가 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그게 예禮 문화의 뿌리인 것이다. 한마디로 예禮 문화는 옛적 상제님에 대한 천제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한 가지 역사적 사실에서, 우리는 예에 대한 모든 것을 터득할 수 있다.

(2001년 7월 29일 종도사님 말씀 中)

 

 

 

 

예禮를 통해서 천지의 정신과  내 몸(마음) 하나가 된다.

천도天道의 사덕四德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이고, 인도人道의 사덕四德은 인의예지仁義禮智다.

원형이정은 천도의 춘하추동, 우주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지구일년 사계절의 정신으로 볼 때, 봄의 정신은 원元, 여름의 정신은 형亨, 가을의 정신은 이利, 겨울의 정신은 정貞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도의 사덕인 인의예지를 얘기할 때, 예禮는 여름에 붙는다.

그러니까 만물이 태어나 자라면서 제자리 잡아나가는것, 질서를 잡아나가는 것을 예라고 볼 수 있다.

그 예를 우리가 인륜이나 인간동정의 몸놀림의 질서로 얘기하든, 크고 작은 사회질서로 얘기하든, 예禮가 극진할 때, 정성이 지극할 때, 그 예를 통해서 결국 천지와 내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는 것이다. 

 

 

 

 

예禮란 내 마음의 표출이며, 예의 궁극은 마음의 조화다.

예禮란 궁극으로 가면 인간 마음의 조화, 심지화心之和다.

나와 자연,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우주와 내가 하나 된 마음, 그 본래 마음 본심本心!  일심一心!  진심眞心!  참마음으로 절을 하면, 마음이 가라앉아 진정으로 편안하고 지극히 온화해서 행복감이 느껴진다.

 

예禮라는 건, 그 깊은 곳에 있는 내 마음이 기거동작으로, 몸밖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예는 단지 이것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나와 우주만물의 관계에서 볼 때, 이 대우주 통치자이며 삼계대권의 지존자이신 상제님과 신神들에게 감사를 올리는 의식, 절하는 것, 이게 예의 근본 뿌리이다. 청수 올리고 사배 심고할 때, 상제님과 내가 진정으로 한마음이 되면 그 은혜로 상제님 기운을 받고 천지기운을 받는다.

 

예를 통해 나의 본 마음 자리로 돌아가고, 예를 통해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고, 진정한 예를 통해 내가 우주의 주신主神 조화옹이신 상제님과 하나가 된다. 즉 상제님 도道를 받아 체험함으로써, 진리 그대로 행동할 수 있는 힘, 생명력을 얻는다. 이것이 예의 바른 뜻이다.

((2001년 9월 29일 종도사님 말씀 中)

 

참된 예禮를 통해서 나의 본 마음 자리로 돌아간다.

세속 껄이 벗어진 바르고 참된 예를 통해서 나의 본 마음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멋지게 예술적으로 사배심고를 하면 몸이 고요해지면서 편안하다. 몇 시간씩 몇 년 동안 앉아 수행했을 때 보다도 더 마음이 편해진다. 이것은 자신이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예를 잘 갖추어 절하면 인간의 품격과 위의를 갖추게 된다.

(2001년 7월 29일 종도사님 말씀 中)

 

 

예禮에 따라 행동하고 멈출 줄 알아야 한다.

만유의 질서인 예禮에 따라 동정動靜함이 사람의 도리다.

"동어예자動於禮者라야 정어례靜於禮하나니 왈도리曰道理요 정어무례靜於無禮하면 즉則 왈무도리曰無道理니라"

(증산도 도전道典 8":107)

 

여기서 상제님이 강조하고자 하신 메시지는 "동動"에 담겨 있다. 이 "동"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누가 나에게 말하거나 어떤 반응을 보이거나 거기에 대해 내가 대처하는 것 등이 전부 동動, 움직임이다.

마음이 움직이고 몸이 움직여 행동으로 나타난다. 예禮에 동動할 줄 알아야 예禮에 정靜할 줄 아나니 왈曰 도리道理다.

즉 예에 따라 바른 행동을 할 줄 알아야 예에 따라 정靜할 줄도 아는 것이니, 그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예란 이 세상과 우주만유의 질서다. 그 예에 따라, 그 때의 상황과 실정에 따라 중정中正의 도道로 조화있게 반응하는게 바로 도리道理다. 그리고 무례한 것을 보고도 침묵을 지키고 앉아만 있으면, 그건 도리가 아닌 것이다.

(2001년 7월 29일 종도사님 말씀 中)

 

내 한 몸의 동정動靜, 리듬을 법도에 맞게 가져야 예禮다.

인사人事문제로, 사람 사는 데 있어서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손놀림 발놀림의 예법 하나만으로도, 인간관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상제님이 "일신수습一身收拾이 중천금重千金이니"라고 하셨다. "내 한 몸의 움직임을 어떻게 갖느냐 하는 게 천금千金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내 한 몸의 동정動靜, 리듬을 법도에 맞게 갖는 것, 그게 예禮다.

 

 

 

예禮는 부족해도 넘어서도 좋지 않다.

도장 성전에 들어설 땐 입구에 서서 두 손을 합장하고 읍배를 한다.

읍배란 읍揖하는 것, 머리를 조아리는 건데, 너무 구부러져도 안 좋다. 45도 정도로 공손하게 한다. 너무 숙이는 건 유치하고 천박하다.

 

예禮라는 것은 기준이 있다. 부족해도 안 좋고 넘어서도 안 좋다. 과불급의 문제다.

성전이나 도장 내에서 걸어다닐 때, 공손하게 두 손을 잡는 공수 자세가 좋다. 그리고 누가 수도하거나 행사가 있을 때는, 경건한 마음으로 뒤꿈치를 약간 들고, 소리 안 나도록 걷는다.

(2001년 8월 10일 종도사님 말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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