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개벽중610 비무장지대(DMZ)의 남방한계선(SLL)과 북방한계선(NLL)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 비무장지대(DMZ)와 남북한의 최전방 남방한계선(SLL)과 북방한계선(NLL)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까지 동북아의 작은 한반도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은 세계대전과 맞먹는 규모였습니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정전협정)이 체결됩니다. 1973년 7월 27일 오후 10시 휴전협정이 발효되는데 때를 기준으로 해서 휴전선(군사분계선)을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남북한은 휴전협정이 발효되는 시점인 오후 10시까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됐습니다. 1953년 오후 10시에 확정된 휴전선(군사분계선)이 오늘의 휴전선입니다. 군사분계선(휴전선)을 기준으로 남쪽으로 2km 아래쪽이 남방한계선(So.. 2018. 4. 15. 군사분계선(DML 휴전선)과 비무장지대(DMZ)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정전협정)으로 확정된 한반도 중앙을 가르는 군사분계선(DML, 휴전선)과 비무장지대(DMZ)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에 체결되고 오후 10시에 발효된 이른바 6·25 한국전쟁의 정전협정(휴전협정)에 의해 만들어진 155마일(248km)의 군사분계선(DML)을 우리는 휴전선이라고 통칭하고 있습니다. 1950년 10월 중공의 주은래(저우언라이) 총리 겸 외교부장은 미국이 한반도 삼팔선을 넘어 북진하면 중공은 한국전쟁에 참전한다고 경고를 보냈습니다. 중공(중국)의 참전으로 한국전쟁의 확전을 우려한 유엔은 3인 위원회 대표를 통해 1950년 12월 중순부터 중공 측과 정전협상을 벌였지만, 1951년 1월 초순 중공은 유엔의 제의를 거부하고, 이른바 인해전술의 대규모 공.. 2018. 4. 14. 1950년 625 한국전쟁과 정전협정(휴전협정)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한국전쟁과 전쟁 당사국 대한민국 조인이 없는 정전협정문(휴전협정문) 1950년 6월 25일에 발발한 한국전쟁의 당사국은 대한민국과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해 한반도가 두 동강이 나고, 한반도에 사는 같은 우리 민족 간에 일어난 전쟁을 6·25전쟁 또는 한국전쟁이라고 불러왔습니다. 1953년 7월 27일 6·25 한국전쟁 휴전협정문(정전협정문)에는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 북한 김일성, 팽덕회 중공군 사령관의 서명만 있고, 전쟁 당사국 대한민국은 조인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육군 소장 최덕신은 휴전협정문이 조인될 당시 대표로 배석만 했습니다. 1950년 12월 유엔에서 한국전쟁 휴전문제가 논의되었고, 이란, 캐나다, 인도의 .. 2018. 4. 8.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과 38선(삼팔선) 획정 2차 세계대전 승전국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과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3·8선(삼팔선) 획정 소련은 1945년 8월 9일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150만 명의 대군을 앞세워 만주를 넘어 한반도로 진격해 들어 왔습니다. 소련군은 1945년 8월 11일 한반도의 함경북도 웅기, 12일 나진, 13일 청진을 점령했습니다. 계속 남하한 소련군은 1945년 8월 24일 평양에 입성했고, 8월 26일 3·8선(삼팔선)을 봉쇄하면서 한반도 이북을 완전하게 점령합니다. 1945년 8월 15일 정오 일본 왕 히로히토가 라디오를 통해 항복 방송을 합니다. 그러나 실제 일본이 항복문서에 조인한 것은 1945년 9월 2일입니다. 1945년 9월 7일 맥아더는 포고령 제1호를 발동했고, 9월 9일에 조선에 발표.. 2018. 4. 7. 일본 아베 총리 평화헌법 개정 전쟁가능한 보통국가 사학스캔들로 위기에 몰린 일본 아베 총리의 정면 돌파 일본 아베 총리의 군국주의 회귀 - 일본 헌법 제9조(평화헌법) 개정으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 실현 일본은 세상이 다 아는 전범국가지만, 침략전쟁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피해국과 피해자에게 사과 및 피해 보상도 하지 않은 세계 유일의 전범국가입니다. 그래서인지 전범국가 일본의 꿈은 일본의 평화헌법(헌법 제9조)을 개정해서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가 되는 것입니다. 역대 일본 총리 상당수와 現 아베 총리의 꿈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미명아래 추진하고 있는 전쟁 가능한 보통국가입니다. 일본이 군국주의 국가로 회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은 평화헌법 개정을 반대하는 집회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전후 70여 년 동안 일본의 숙원사업은 일본 평화헌법(.. 2018. 4. 1. 스트롱맨의 위기 일본 아베 총리 사학스캔들 일본 제90대, 96대, 97대, 98대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전후(戰後) 일본의 최장수 총리를 노리는 스트롱맨의 위기 - 아베 총리 사학스캔들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북한의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하여 시진핑과 북·중 정상회담까지 하자 일본의 스트롱맨 아베 총리는 일본 패싱을 우려해 안간힘을 쓰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지금의 국제정세를 흔히 스트롱맨의 전성시대라고 말합니다. 자국 내에서는 카리스마적인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고 밖으로는 경제와 군사력을 내세운 힘의 논리로 자국 우선주의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지구촌 대표적인 스트롱맨은 '미국 우선주의'의 미국 트럼프 대통령,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위대한 러.. 2018. 3. 31. 중국 시황제 시진핑 러시아 차르 푸틴과 트럼프 세계 최고 강대국, 최대 강대국을 꿈꾸고 있는 중국 시황제(習皇帝) 시진핑 국가주석과 러시아 차르 푸틴 대통령 '황제 중의 황제', '차르 중의 차르' 미국 트럼프 대통령 지구촌은 스트롱맨(독재자)의 전성시대입니다. 지구촌 경제와 정세를 뒤흔드는 지구촌 4대 강국은 패권전쟁에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주도권을 쟁탈하기 위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지구촌 4대 강국의 스트롱맨이 지구촌에서 유일하게 치열하게 패권 다툼을 벌이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한반도입니다. 지구촌 4대 강국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최고 지도자 중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장기집권에 성공했지만,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의 아베 총리는 자신들이 잘못된 처신으로 어려움을 겪.. 2018. 3. 25.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 시황제의 장기집권과 독재 대국굴기(大國崛起)의 중국몽(中國夢)을 실천하는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시대를 실현? 중국 시진핑의 시황제(習皇帝)의 장기집권과 독재 시대 개막 마오쩌둥의 장기집권과 독재 체제, 결정적으로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이 피폐화되었습니다.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모택동 사망 이후 덩샤오핑은 중국을 재건하기 위해 과감한 개혁정치를 단행했습니다. 도광양회(韜光養晦), 화평굴기(和平崛起)로 개혁개방을 시행했던 덩샤오핑(등소평)과 등소평의 유훈을 계승한 장쩌민과 후진타오에 의해 중국은 30년 동안 고도성장을 이룩했습니다. 모택동의 장기집권과 독재로 중국이 피폐화된 것을 집적 목격한 덩샤오핑은 장기집권과 일인 독재의 폐해를 막기 위해 국가주석과 부주석의 임기를 전인대 2회기의 연임(10년)으로 .. 2018. 3. 24. 러시아 푸틴 대통령 차르의 장기집권과 독재 현대판 차르(Tsar:황제) 푸틴 제정 러시아 시대 차르(황제皇帝)에 버금가는 국민적 지지를 받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제정(帝政) 러시아를 대표하는 차르(황제)는 단연 강력한 추진력으로 강한 러시아를 만든 표도르 대제(차르)입니다. 비판도 받고 있지만, 근대화 정책으로 러시아를 강대국의 반열에 올려놓은 표도르 대제(차르)는 러시아 역사에서 강력한 차르(황제), 개혁 군주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서방 언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정 러시아 시대의 최고 통치자 차르(황제)와 같다고 말합니다. 서방 세계가 강력한 대통령, 강한 러시아를 외치고 있는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국민에 의해 현대판 차르 푸틴의 장기집권과 독재지배 체제가 더 확고해질 것을 걱.. 2018. 3. 18. 중국 시진핑 주석의 대국굴기와 군사굴기 세계 중심, 세계 최강을 노리는 중국 시진핑 주석 경제 대국과 군사 대국으로 우뚝 솟는 중국몽(中國夢) 대국굴기(大國崛起)와 군사굴기(軍事崛起) 중국은 1960년대에서 70년대까지 10년간 지속한 문화대혁명의 피바람 속에 당정 간부 약 300만 명이 숙청됐고, 중국 경제는 피폐해졌습니다. 모택동의 사망 이후 정권을 잡은 등소평은 중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개혁개방 정책을 시작합니다. 등소평(鄧小平, 덩샤오핑)은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전략을 폈습니다. 강대국과의 충돌을 피하고 강대국과 맞설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데 집중하자는 전략입니다. 등소평은 '빛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키운다.'라는 도광양회의 화평굴기(和平崛起) 기조를 유지했습니다. 등소평은 개혁 개방정책은 '흑묘백묘론(黑猫白猫.. 2018. 3. 17.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6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