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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3대 대첩 이순신 장군 한산도대첩 임진왜란 3대 대첩 - 충무공 이순신 장군 한산도대첩 1592년 4월 13일 부산포에 7백 척의 왜선에 약 2만 명에 육박하는 왜군이 침략해 들어왔다. 4월 21일 대구성 함락, 4월 26일 상주 함락, 4월 27일 문경새재를 넘어 4월 28일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장군이 무너졌다. 왜군은 조선군을 파죽지세로 몰아붙여 승승장구하며 1592년 5월 3일 한양도성에 들어왔다. 임진왜란 초기 이후 육상의 조선 군대는 부산진성, 동래성을 빼앗기며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조선 왕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맹장(猛將) 신립장군을 삼도도순변사로 임명하여 왜군을 물리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믿었던 신립장군마저 왜군에 패하고 자살하고 만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선조 24) 전라.. 2016. 11. 15.
선조 30년, 임진왜란에 이어 재침략한 정유재란 선조 30년(1597년), 일본(왜군)이 임진왜란에 이어 재침략한 정유재란 1592년(선조 25) 일어난 일본의 첫 번째 조선 침략전쟁, 임진왜란의 명분은 정명가도(征明假道, 가도입명假道入明)였다. 임진왜란은 일본이 명나라를 치려고 하니 조선은 길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임진왜란을 도자기전쟁, 노예전쟁, 살육전쟁, 무역전쟁 등으로 말하기도 한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년(1597년)에 왜군이 재차, 다시, 거듭, 두 번째로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란 의미다. 임진왜란에 이어 일본의 재침략인 정유재란(선조 30)은 그 양상이 달랐다. 조선이 일본의 공격대상이었다. 임진왜란 발발하고 조선이 배제된 상태에서 명나라 심유경과 일본의 강화회담이 결렬되면서 일본이 재침략한 전쟁이다. 남해안 일대에서 성을 쌓고.. 2016. 11. 14.
선조 25년 일본 침략전쟁, 1592년 임진왜란 선조 25년 일본의 침략전쟁,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전쟁에 대한 아무 준비가 없던 조선이 일본 왜군에 의해 한반도가 쑥대밭이 된 침략전쟁이다. 일본은 열도 안에서 전국시대(戰國時代) 120년간 자기들끼리 전쟁을 지속했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수많은 전쟁 경험과 조직화한 군대로 조선을 침략했다.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은 1592년에서 1597년 재침한 정유재란까지 포함하여 6년 7개월(약 7년)의 일본 침략전쟁으로 말한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구분하기도 한다. 조선 13대 왕 명종대왕 이환(재위 1545~1567)이 후사 없이 승하하면서 방계였던 하성군 이연이 조선 14대 왕(재위 1567~1608)으로 즉위한다. 조선은 1392년 이성계가 역성혁명으로 세웠다. 이성계.. 2016. 11. 13.
조선왕조실록의 대금황제 이징옥의 난 수양대군과 한명회 일파가 편찬한 조선왕조실록 『노산군일기(단종실록)』 대금 황제(大金黃帝) 이징옥의 난 조선왕조실록의 『노산군일기(단종실록)』는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수양대군)의 신하가 편찬한 실록이다. 한마디로 『노산군일기』는 승자가 기록한 역사다. 조선 27명의 왕 중에 고종과 순종을 제외한 25명 왕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의 26대, 27대 왕이면서 대한제국 초대와 마지막 황제인 고종과 순종의 실록은 일본 제국주의의 손에 의해서 쓰였기에 조선왕조실록에 넣지 않는다. 조선 1대 왕 태조 이성계에서 조선 25대 왕 철종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이다. 25명의 왕 중에 폐위된 노산군(단종), 연산군, 광해군의 기록은 『노산군일기』, 『연산군일기』, 『광해군일기』로 편찬되었다. 『노산군일.. 2016. 11. 12.
계유정난의 주역 한명회의 살생부(생살부) 계유정난(癸酉靖難)의 주역으로 생(生)과 사(死)를 가른 한명회의 살생부(殺生簿, 생살부生殺簿) 살생부(殺生簿, 생살부生殺簿)는 살릴 사람과 죽일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문서다.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를 결정짓는 명부(名簿)는 계유정난의 주역 압구정 한명회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혹자는 한명회가 아닌 수양대군이 살생부를 만들었다고도 한다. 조선 5대 왕 문종은 승하 전 고명대신에게 아들 단종을 잘 보필하여 주라고 부탁하였다. 어린 조카 단종과 그 옆에서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김종서와 황보인 등 고명대신에 의해 약해지는 왕권을 보면서 야심가 수양대군은 고명대신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수양대군은 문무를 겸비했고 정치적 야심도 컸다. 그는 스스로 주나라의 주공단(周公 旦)임을 자처했다. 중국 주나라 무.. 2016. 11. 11.
조선시대 3대 도적(의적) - 홍길동 임꺽정(임거정) 장길산 조선왕조 시대 3대 도적(의적) - 연산군 때 홍길동, 명종 때 임꺽정(임거정), 숙종 때 장길산 조선왕조시대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3대 도적(의적) 홍길동과 임꺽정(임거정), 장길산은 실존인물이다. 조정에서는 홍길동, 임꺽정(임거정), 장길산이 무리를 이끌고 재물을 도둑질한 도적으로 보았고, 백성과 일부 야사에서는 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조선왕조시대 3대 도적(의적) 홍길동, 임꺽정(임거정), 장길산은 국정이 문란하고 어지러운 사회 분위기에 나타난 도적들이다. 혹자는 홍길동과 임꺽정(임거정), 장길산은 모두 도적에 불과했으며, 소설에 의해 의적으로 미화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조선왕조 시대 3대 도적(의적) 연산군 때 충청도 일대에서 활동한 홍길동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연산군 6년(1500).. 2016. 11. 10.
조선왕조시대 3대 간신 - 유자광, 임사홍(임숭재), 김자점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눈이 멀어 나라와 백성을 위한 공욕(公慾)을 버린 조선왕조 시대 3대 간신 - 유자광, 임사홍(임숭재), 김자점 간신(奸臣)은 세상의 모습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군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온갖 아부와 아첨, 감언이설로 절대권력자의 눈과 귀만 즐겁게 해주는 자들이다. 국가와 백성을 위한 공욕(公慾)보다는 개인의 영달을 위해 절대 권력에 빌붙고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부패 등을 일삼아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는 자들이 간신(奸臣)이다. 조선왕조 시대에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전횡하여 나라의 기강과 근간을 흔든 간신은 한명회, 유자광, 김자점, 윤원형, 임사홍과 임숭재 부자(父子), 이이첨, 홍국영을 비롯하여 숱하게 많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유자광, 임사홍(임숭재), 김자점을 조선왕조시대 .. 2016. 11. 9.
조선시대 3대 기인 -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염(정북창) 토정 이지함 조선왕조 시대 3대 기인(奇人) - 매월당 김시습, 북창 정염(정북창), 토정 이지함 기인(奇人)은 일반인과 함께 세상을 살지만, 말과 행동, 정신과 사상이 보통사람과 다른 사람을 일컫는다. 기인은 일반인보다 가진 재주가 신통하고 비범한 사람이라 하여 이인(異人)이라고도 말한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 세종 17~성종 24), 북창 정염(정북창, 1506~1549, 중종 1~명종 4), 토정 이지함(1517~1578, 중종 12~선조 11)을 조선왕조 시대 3대 기인이라 부른다. 조선왕조 시대 3대 기인, 비운의 천재 첫 번째 기인은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다. 어려서부터 천재로 소문이 자자했던 매월당 김시습은 임금의 부름을 받고 5살에 궁궐에 들어간다. 어린 김시습이 쓴 글을 보고.. 2016. 11. 8.
사육신과 함께 충절을 지킨 매월당 김시습 등 생육신 목숨을 바친 사육신(死六臣)과 함께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충절(忠節, 충성과 절의)을 지킨 매월당 김시습, 미수 성담수, 경은 이맹전, 관란 원호, 어계은자 조려, 추강 남효온 - 생육신(生六臣) 수양대군(세조)과 한명회, 신숙주 등이 결탁하여 왕위를 찬탈한 계유정난(1453년, 단종 1)이 끝나고, 1455년(단종 3)에 조선 6대 왕 단종대왕은 수양대군에게 전위한다. 1455년(세조 즉위년) 수양대군이 조선 7대 왕으로 즉위하고, 1456년에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이 단종복위운동을 벌이다 발각되어 모두 죽었다. 목숨을 바쳐 충신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 등 사육신과 함께 왕위찬탈을 한 수양대군을 왕으로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거나 방랑과 은.. 2016. 11. 7.
충신불사이군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 단종복위운동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 -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성삼문, 하위지, 박팽년, 이개, 유응부, 유성원 -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사육신(死六臣)의 단종복위운동 세종대왕, 문종대왕, 단종대왕의 신하로 단종복위운동을 주도하다 발각되어 충신불사이군(忠臣不事二君)의 절개를 죽음으로 끝까지 지킨 사육신은 매죽헌(梅竹軒) 성삼문(1418~1456), 취금헌(醉琴軒) 박팽년(1417~1456), 백옥헌(白玉軒) 이개(1417~1456), 단계(丹溪) 하위지(1412~1456), 낭간(瑯玕) 유성원(미상~1456), 벽량(碧梁) 유응부(미상~1456) 여섯 분이다. 1453년(단종 1) 수양대군과 한명회 일파는 단종을 보필하던 김종서, 황보인, 남지 등 수많은 사람을 역모로 몰아 죽였다. 왕위찬탈의 .. 2016. 1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