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3759

수양대군(세조)과 압구정 한명회 왕위찬탈 계유정난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세조) 이유와 압구정 한명회의 왕위찬탈사건 - 계유정난(癸酉靖難) 조선 6대 왕 단종대왕 재위 1년(1453, 계유년)에 수양대군(세조)과 압구정 한명회가 주도해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일으킨 계유정난이 발생한다. 조선 7대 왕 세조, 조선 8대 왕 예종, 조선 9대 왕 성종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아귀에 쥐고 천하를 호령했던 한명회(1415~1487)의 호가 압구정이다. 연산군 때 쓰인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에는 한명회의 호를 압구정(押鷗亭)이라 기록하고 있고, 한명회가 만든 정자를 압구정(狎鷗亭)으로 기록하고 있다. 한명회의 할아버지 한상질은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정2품 예문관(홍문관)대제학(장관급)을 지냈다. 일곱 달 만에 태어난 칠삭둥이 한명회는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 2016. 11. 5.
조선왕조(봉건)시대 국정농단과 권력 전횡 봉건주의체제 조선왕조시대 국정농단(國政壟斷)과 권력 정횡(權力專橫) 519년의 역사를 지속한 봉건주의적 사회였던 조선왕조시대에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전횡하고 국정을 농단한 일부 왕비와 특정 세력과 위정자가 있다. 흔히 봉건주의를 세습체제사회라고 하고, 봉건왕조시대가 끝나고 출현한 현재의 민주주의(공산주의, 자본주의)를 선출체제사회라고 한다. 전혀 다른 이질적인 사회구조 같지만, 최고권력자와 위정자 등 일부를 선출하는 방식을 제외하면 봉건왕조시대나 민주주의 사회나 대동소이하다. 조선왕조시대 건국 이념인 백성을 위한 애민(愛民)과 위민정치(爲民政治)와 국민이 주인인 현재의 민주공화국이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으나, 두 시대가 지향하는 바는 백성과 국민을 위한 정치구조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은 예나 .. 2016. 11. 4.
태종 이방원 이방간 2차 왕자의 난(박포의 난) 정안대군(태종) 이방원과 회안대군 이방간의 권력 최정점을 향한 정면 대결 - 2차 왕자의 난(박포의 난) 1398년(태조)에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은 정안대군(태종) 이방원과 정도전 세력과 정면 재결이었다. 조선을 설계한 삼봉 정도전은 신덕왕후 강씨와 함께 태조 이성계의 서자이며 여덟째 아들인 이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게 하였다. 삼봉은 조선을 설계한 기획자다.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야 했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상대였던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이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 안 되었다. 신권(臣權) 중심의 정치를 구상했던 삼봉 정도전과 왕권(王權) 중심의 정치를 구상했던 정안대군(태종) 이방원은 절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과도 같았다. 흔히 왕자의 난은 태종 이방원이 왕이 되기 위한 권력에 대한 탐욕 .. 2016. 11. 3.
태종 이방원(왕권) 삼봉 정도전(신권) 1차 왕자의 난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태종 이방원과 삼봉 정도전, 왕권정치와 신권정치의 정면 대결 - 1차 왕자의 난 조선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이며, 조선 3대 왕으로 즉위한 태종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역성혁명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창업한 근세조선의 개국공신 중 삼봉 정도전은 자타가 인정하는 단연 최고 일등공신이다. 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삼봉 정도전은 이성계의 장자방이며 최고의 책사로 조선건국의 설계자이며 기획자였다. 조선은 창업 때부터 커다란 불씨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정안대군(태종) 이방원과 삼봉 정도전은 성리학적(주자학, 유교) 왕도정치, 즉 성리학적 이상 국가건설이라는 같은 꿈을 꾸었다. 그러나 왕권(王權) 중심의 조선을 생각하고 있던 정안대군(태종) 이방원과 .. 2016. 11. 2.
기축옥사- 서인 정철과 정여립 모반(역모)사건, 동인 몰락 조선왕조 최대 피의 숙청 사건 - 정여립 역모(모반)사건이 불러온 피의 광풍 기축옥사(己丑獄事) 정여립 모반사건을 계기로 서인(西人) 정철이 주도한 피의 숙청 기축옥사와 동인(東人)의 몰락 성종,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 때까지 훈구(공신)세력과 사림(士林, 선비)세력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왔다. 선조 때 이르러 사림세력이 정국의 주도권을 잡았으나 이조전랑의 자리를 놓고 시작된 개인적인 앙금은 1575년(선조 8) 사림(士林)세력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되면서 정치적 대립관계 유지하는 붕당정치가 시작되었다. 정여립의 모반(역모)사건으로 촉발된 기축옥사(己丑獄事)는 1589년(기축년, 선조 22)에 시작하여 1590년(경인년, 선조 23), 1591년(신묘년, 선조 24)까지 3년 동안 .. 2016. 11. 1.
조선 시대 4대 사화 - 을사사화(윤임 윤원형 대윤과 소윤 외척) 조선 시대 4대 사화(士禍, 선비들의 재앙) 1545년(명종 즉위년) 왕실의 외척 세력 윤임과 윤원형 대윤과 소윤의 권력 투쟁 을사사화(乙巳士禍) 조선 11대 왕 중종(1488~1544, 재위 1506~1544)이 1544년 승하하고, 조선 12대 왕 인종(1515~1545, 재위 1544~1545)이 재위 8개월 남짓 만에 갑작스럽게 승하한다. 1534년 조선 13대 왕으로 즉위한 명종 이환(1534~1567, 재위 1545~1567)은 재위 23년의 대다수를 허수아비 왕으로 보냈다. 조선 11대 왕 중종은 3명의 왕비와 9명의 후궁을 두었다. 중종의 조강지처 단경왕후 신씨(1487~1557, 재위 1506년 9월 2일 ~ 9일)는 중종이 즉위한 지 7일 만에 반정공신들에 의해 폐위됐다. 제1계비 장경.. 2016. 10. 31.
조선 시대 4대 사화 - 기묘사화(중종 조광조) 조선 시대 4대 사화(士禍, 선비들의 재앙) 1519년(중종 14) 조선 11대 왕 중종과 훈구(공신)세력이 개혁정치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등 사림 세력을 숙청한 선비들의 재앙 기묘사화(己卯士禍) 왕이 될 마음이 없었던 남자, 반정 세력에게 떠밀려 왕이 된 남자 바로 조선 11대 왕 중종이다. 1506년 반정에 성공한 훈구(공신)세력이 권력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중종 재위 초기는 반정공신 박원종(1467~1510), 성희안(1461~1513), 유순정(1459~1512)의 세상이었다. 중종반정을 주도한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이 세상을 떠나자 훈구(공신)세력이 주춤한 틈을 이용하여 중종은 왕권강화와 개혁정치를 하기 위해 사림세력을 등용한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개혁정치가 정암 조광조다. 조선 시.. 2016. 10. 30.
조선 시대 4대 사화 - 갑자사화(연산군 임사홍) 조선 시대 4대 사화(士禍, 선비들의 재앙) 1504년(연산군 10)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복위 문제로 임사홍, 신수근 등 궁중세력이 사림세력을 숙청한 갑자사화(甲子士禍)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 이후 사간원, 홍문관, 사헌부, 즉 삼사(三司)에서 연산군에게 직간하는 신하가 사라졌다. 조선 시대 4대 사화 중 두 번째 사화인 갑자사화(甲子士禍)는 연산군과 궁중 세력이 부중(府中, 조정 대신) 세력을 숙청한 사화(士禍)다. 연산군은 갑자사화(1504)가 일어나기 1년 전인 1503년 예조판서 이세좌가 연회에서 임금이 따라 주는 술을 흘렸다는 이유로 귀양을 보냈다가 다시 풀어준다. 이세좌는 성종의 명으로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가지고 간 인물이다. 1504년에 경기도 관찰사 홍귀달의 손녀가 후궁으.. 2016. 10. 29.
조선 시대 4대 사화 - 무오사화(연산군 유자광) 조선 시대 4대 사화(士禍, 선비들의 재앙) 연산군 4년(1498년) 유자광 등 훈구(공신)세력이 사림(士林, 선비)세력을 숙청한 무오사화(戊午士禍) 조선 9대 왕 성종은 훈구세력이 국정을 주도하자 사림 세력을 등용하여 훈구세력의 독주를 막았다. 1494년 연산군이 조선의 10대 왕으로 즉위했다. 연산군 즉위 초는 사림세력과 함께 제도를 개혁해가며 태평성대를 이어갔다. 국정이 안정되자 사림세력은 임금도 성리학(주자학, 도학)의 이념에 맞춰 이상적인 군주가 되어야 한다고 하며 연산군에게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임금과 신하(사림) 간에 감정의 골은 깊어지며 대립을 하게 된다. 연산군은 어머니 폐비 윤씨의 일을 알고부터 방탕한 생활을 넘어 폭군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1498년(연산군 4년,.. 2016. 10. 28.
붕당정치의 전개와 폐해-동인 서인 남인 북인 노론 소론 조선왕조 붕당정치(사색당파)의 전개와 폐해 동인에서 분열된 남인과 북인, 서인에서 분열된 노론과 소론 태조 이성계가 창업한 조선왕조는 몇몇 무장(武將)을 제외하고는 선비가 조선 창업을 주도했고, 조선 패망에 직접 관여했다. 조선은 성리학(주자학)을 근간으로 하여 국가를 경영하였다. 조선의 군주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백성을 교화하는 한편 국정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큰 덕목이다. 조선의 선비 역시 군주와 마찬가지로 성리학을 통해 천지의 이치(자연의 법칙)를 공부하고 스스로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군주(임금)를 보필하고 국가와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성리학적 이상국가 건설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정심(正心)과 수신(修身)을 잘못한 일부 선비는 권력에 대한 탐욕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2016.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