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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개벽중610

사상 최악의 해양 대참사(해난사고)와 우키시마호 폭침사건 사상 최악의 해양 대참사(해난사고)와 폭발 원인과 진상규명이 안 된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아프리카 난민과 시리아 난민 보트가 전복되어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숨지는 해난사고 소식을 방송을 통해 가끔 접한다. 이런 해양 대참사와 다름없는 해난사고 소식은 단지 가난한 나라, 힘없는 나라의 불법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죽음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금방 잊힌다. 반면 정치, 경제, 군사 강대국의 국민 수십, 수백 명이 해난 사고로 죽거나 다치면 온 나라, 아니 전 세계가 지나칠 정도로 떠들썩하게 사건을 집중보도하고 희생자를 추모한다. 인간 생명의 가치는 본질에서 같지만,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된 이 시대는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이 인간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었다. 전쟁 중에 민간 소유의 배와 국가 소유의 전.. 2017. 8. 19.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된 광복절 일본 제국주의의 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 패망과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壓制)에서 해방(解放)된 광복절(光復節) 1945년 8월 15일 정오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에서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때 피폭되어 8월 7일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의 장례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1945년 8월 15일 장례식의 주인공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을 침탈당한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손자이며, 의친왕 이강(1877~1955)의 둘째 아들 이우(1912~1945)다. 망국의 왕족 이우의 장례식은 일본 제국주의 히로히토 천황의 긴급 중대 방송 때문에 한 시간 늦게 시작됐다. 아이러니한 것은 경성운동장(동대문운동장, 1926)은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조선)의 성곽을 허물고 1925년 결혼한 히로히토 황태자의 결.. 2017. 8. 15.
사이판 자살절벽과 만세절벽, 티니안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침략전쟁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총알받이가 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남양군도 사이판 섬 자살절벽과 만세 절벽, 티니안 섬에서 목숨을 잃은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의 최고 전범은 일본 제국주의 히로히토 천황이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의 승전국 미국은 일본의 천황제를 인정하고, 침략전쟁을 일으킨 일본 천황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일본군이 있던 장소에는 조선인 강제징집 피해자,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강제동원됐다.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파괴되고 노예보다 못한 참담한 삶을 살던 한국인은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의 전쟁터에서 무고하게 희생됐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의 최정예부대 관동군과 본토 일본군, 조선 주둔 일본군 일부가 남양군도.. 2017. 8. 13.
태평양전쟁의 격전지 남양군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 제국주의가 1941년 12월 7일 미국 진주만을 기습 폭격하여 시작된 태평양전쟁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 최대 격전지 남양군도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일본 제국주의는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켰고, 1941년에는 미국을 기습 폭격하면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일본 제국주의가 전선을 확대하면서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일본은 조선인을 강제징집, 군속(군무원), 학도병(소년 및 학도지원병), 강지징용(강제노역), 일본군 위안부 등으로 강제동원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남양군도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숫자 통계는 없다. 일본이 강제동원 자료를 고의로 소각 또는 폐기와 은폐를 하거나 전쟁 중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태평양전쟁 말기 남양군도의 사이판 섬을 점령하기 위한 .. 2017. 8. 12.
일제강점기 일본의 남양군도 조선인 노무자 인력송출(이주) 미국과 일본의 격전지 남태평양, 일제강점기 일본이 남양군도에 인력 송출(이주)한 조선인 노무자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 일본이 국가총동원법 시행을 전후하여 조선인 노무자를 국내 또는 국외로 보낸 것에는 공통점과 다른 점이 있다. 공통점은 온갖 거짓말과 감언이설로 현혹하고 때론 압박하여 모집과 알선 형식으로 데려가 조선인을 차별하고 감시와 통제 속에 인권은 유린당하고 노예 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다른 점은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하기 전에는 조선인 노무자 인력 송출에 어느 정도 개인의 선택권이 주어졌다는 것이고, 국가총동원법을 시행하고 나서는 조선인 강제징용이란 말 그대로 개인이 거부한다고 해도 강제로 동원했다는 점이다. 1946년 7월 1일 미국은 남태평양 마셜 제도에 있는 조그만 비키니 섬에서 핵폭탄 .. 2017. 8. 6.
일본의 태평양전쟁과 해양패권의 전진기지 남양군도 미국과 일본의 태평양전쟁과 일본 제국주의의 해양패권 전진기지 남양군도 남양군도(南洋群島)는 말 그대로 남태평양 지역에 무리 지어 있는 여러 섬에 대한 총칭이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연합국이 되었고, 독일의 식민지였던 남양군도에 상륙해 점령하고 통치한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일본이 남양군도를 위임 통치형식의 공식적 지배가 시작된다. 1931년 일본의 자작극인 만주사변과 1932년 일본의 꼭두각시 나라 만주국 건국으로 사면초가에 몰린다. 1914년부터 시작한 남양군도에 대한 일본의 통치는 1933년 일본이 국제연맹을 탈퇴하지만, 1945년 일본이 패망할 때까지 남양군도 통치를 계속한다. 일본은 사이판, 마셜 제도(諸島, 여러 섬), 캐롤라인 제도, 팔라우.. 2017. 8. 5.
일본의 사할린 조선인 강제징용과 이중징용 피해자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끌려가 강제노역에 시달린 조선인 강제징용과 이중징용 피해자 아직도 무국적자로 살아가는 사할린 고려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후손 일본 열도의 최북단에 있는 섬, 홋카이도(북해도)와 마주한 러시아 사할린은 한때 러시아와 일본이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던 섬이다. 월타족과 니브흐족(퉁구스계), 홋카이도의 원주민 아이누 등이 거주하던 사할린은 몽골(원나라)과 명나라, 청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19세기 들어서면서 러시아가 정착민을 보내 실효적 지배를 했다. 사할린은 19세기 중반 러시아와 일본이 남북으로 분할하여 지배하였고, 일본이 러시아에 사할린을 넘겨주고 쿠릴 열도 남쪽의 4개 섬을 넘겨받았다. 그리고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사할린 섬의 남쪽 절반을 러시아로부.. 2017. 7. 30.
일제강점기 홋카이도(북해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일제강점기 일본의 최북단 섬 홋카이도(북해도北海島) 탄광과 군사시설 건설현장 등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 북해도(홋카이도)는 본래 아이누가 살던 섬으로 일본의 영토가 아니었다. 홋카이도는 1868년 메이지유신 때 만들어진 일본 제국 헌법에서도 북해도(홋카이도)는 일본 영토에 포함하지 않았다. 당시 일본 제국 헌법에는 조선(대한민국)의 독도, 유구 열도(오키나와 유구왕국), 사할린, 쿠릴열도(북방 4도) 역시 일본 영토에 포함되지 않았다. 대부분 교과서와 학자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북해도(홋카이도)를 개척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의 북해도(홋카이도) 개척 역사는 왜곡된 것으로 일본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자국의 영토가 아닌 곳을 힘으로 개척한다는 것은 식민지.. 2017. 7. 29.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장생탄광(2) 일제강점기 해저탄광 갱도붕괴로 바다 밑에 수장(水葬)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장생탄광(長生炭鑛) - (2)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노무자가 석탄 채굴작업을 한 장생탄광은 해저탄광으로 당시 여느 탄광처럼 비좁고 어두웠으며, 높은 습도와 고온의 열기 속에 속옷(훈도시)만 걸친 채 석탄 채굴 작업을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끌려간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작업 현장은 지역을 불문하고 생지옥이었다. 장생탄광에서 일한 대부분의 조선인 노무자는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사람들이었고,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왔다 장생탄광에서 일한 조선인도 일부 있었다. 일본인과 조선인 등 1천 명 남짓 일하던 장생탄광에서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숙소에서 너덧 평 되는 방.. 2017. 7. 23.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와 장생탄광(1) 일제강점기 해저탄광 갱도붕괴로 바다 밑에 수장(水葬)된 조선인 강제징용(강제노역) 피해자와 장생탄광 - (1) 석탄산업은 조선과 철강 등과 함께 일본의 산업 혁명을 주도했던 근대화의 상징이다. 석탄산업은 일본 제국주의가 군사 대국화와 팽창주의 과정에서 일본 근대화의 기반이 된 산업 중 하나다. 산업근대화를 이룬 일본은 주변국을 침략하는 군사적 목적의 전쟁에 이용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강제징용 피해자는 석탄산업뿐만 아니라 조선과 철강산업을 비롯한 공사장, 벌목장, 군수기지 건설 현장 등 인력이 필요한 거의 모든 분야에 노무자로 강제동원됐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군수물자를 동원한 일본 제국주의는 모든 산업 분야에서 안전보다는 생산량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사고로 목숨을 잃은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도 많.. 2017. 7. 22.